우리나라는 아직 여자가 살기에는 멀었나보다....


할아버지 장례식
사실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그래도 몇주가 지났건만....


여자로 지내면서 슬펐던 일은 없었다.
장례식 전만 하더라도 말이다.
장녀로 태어나서, 할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자랐다.
아빠가 둘째였고, 난 여자였지만
남여 겹상도 하지 않는 가부장적인 집안이었지만 나에게는 예외였다.


맏며느리는 아니여도 첫며느리였던 엄마가 일을 할 때면, 할아버지가 나와 직접 놀아주셨고
내가 할아버지 옆에서 밥을 먹어도 아무 말도 안하셨고
파킨스병으로 인해서 치매 증상이 나타나서 큰아빠와 아빠를 헤깔리셨지만 내 이름은 또박또박 불러주셨고
핸드폰이 어렵다는 할아버지 옆에서 몇번씩 부재중통화나 메세지를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한동안 못뵈었던 먼 친척분들이 찾아오셨다
할아버지의 사촌이라는 분들부터 시작해서 내게는 7촌, 8촌 되는 친척들이 나를 보고는 한결같이
할아버지가 널 많이 이뻐했다
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사실 오랜 기억이었지만, 가끔 서울에 올라오실때면 나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은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서러움을 느꼈다.
사촌동생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녀석은 손자 나는 손녀.
옆에서 술 한잔 따르라는 삼촌들이 있었지만, 장례지도사는 여자는 원래 따르는거 아니다 라는 말을 했고
매번 넌 하지 마라 라는 이야기를 했다. 전통이지만 괜스레 섭섭했던 것 같다.
먼저 가신 할머니와 함께 합장을 하면서 비석에 세겨진 이름에도 나를 비롯한 손녀들의 이름은 없고
49제를 위해 모신 절에 띄어놓은 풍등(??)에도 그랬다.


이때까지 이런 걸로 섭섭함을 느낀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새해 첫날부터 할아버지를 뵈러 절에 다녀와서 그런걸까......


딸기향기

때로는 홀로 그리고 때로는 함께 여기저기 방랑하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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