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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th DAY IN EUROPE(GERMANY, MUNICH) 22살 여자 혼자 다녀온 2달간의 유럽에세이 |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아침 일찍부터 브라질에서 왔다는 친구들과 떠들고 역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중국인 언니는 빈에서 일정이 겹친다며 보자고 했지만, 결국은 보지는 못했다.
호주 친구들은 버스를 이용해서 여행을 하는데, 버스 루트가 있으면 중간에 어디서든 내릴 수 있고
다시 탈 수 있는? 호주에도 있는 익스플로러 패스 비슷한 것을 이용한다고 햇다.
오전 8시 버스인데 이틀에 한번 있다고 했던 게 떠올라 아침부터 애들을 깨워주었다.
안 깨웠으면 이틀 더 묶을 뻔... ㅎ
나 역시도 체크아웃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리셉션 가서 빈에서 쓸 조식쿠폰을 달랬더니 주면서 음료쿠폰도 하나 더 주었다 -
말로는 빈에서 쓸 수 있으니 거기에서 쓰라고 했는데 빈에서의 음료 쿠폰은 생긴게 달라서 정말 사용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체크아웃 하고 짐을 잠시 맡긴 이후에 다하우로 갔다 -
다하우는 오전 9시에 연다고 되어 있는데 조금 전에 갔지만 돌아다니는 데에는 문제 없었다.
역에서 내려 726번 버스를 타면 다하우 수용소를 갈 수 있다.
▲ 유대인 캠프 지도
▲ 유대인 캠프
네덜란드에서 들었던 안네 프랑크 얘기가 계속 생각났었던 거 같다.
사실은 세계1차대전때부터 운영되던 곳이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매일 아침으로 Roll Call을 하는데
그러니깐 출석을 부르는데,
탈옥자 확인 등을 위해서 하는 이 Roll Call에서
죽은 이의 시체도 데려 나와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굳은 날씨에도 아무리 아파도 참여해야되서 출석을 부르는 와중에 죽어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단다 -
나치나 일본이나 끔찍하게 그지 없는 거 같다.
▲ 남자 수용소
남자 수용소였던 것을 개조해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에는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서대문형무소처럼 층으로 되어 있지는 않고 단일 층이라서 그래도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다 -
서대문형무소의 습함 같은거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이 담겨 있긴 마찬가지였다.
의사가 있었으나 의무실에 가도 제대로 된 처방을 받을 수는 없었고.
다 남자였던 간호사들은 간호는 무슨 기초 의학 지식도 없는 이들이었다고 한다.
수감자들이 불쌍해서 치료를 해 주던 의사도 있었는데,
이것이 발각되어 수감되고 결국 죽은 의사도 있었다.
굶어죽은 사람들도 많고 병으로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나중에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인 등 외국인들도 수감되었다.
또 하나 끔찍한 이야기는 마루타실험이다 -
세계사 공부를 깊게 한 적도 없고,
그마저도 세계2차대전 관련해서는 진주만 등 한국 위주로 봤었기 때문에 내가 아는 건 정말 일부에 불과했다.
반성하는 독일, 그렇지 못한 일본. 이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
반성을 했다 하더라도 당시 사진을 보니 너무 끔찍해서 제대로 사진을 보지도 못했다.
다하우수용소에서만 몇백명이 죽었고, 이러한 수용소가 몇십개나 있었다는 생각이 끔찍했던 거 같다.
▲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물
숙소는 약 30개가 넘게 있었는데 그 중에서 2개만 복원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하나만 구경이 가능했는데 -
우리나라와 달리 침대 문화이다보니 숨막히는 3층 침대로 정말 잠만 잘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냥 비좁은 정도가 아니라, 내가 누워도 꽉 찰 것 같아서
다들 다리가 밖으로 나가진 않았을까 싶다.
▲ 세면대
보면 볼수록 너무 끔찍해서
그리고 수용소여서 그런지 어쩐지 쌀쌀한 기운이 있는 것 같아서
오랫동안 둘러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새삼 여행이 끝나 보니 정말 기억이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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